사람들은 설악산에 오르면 아름다운 풍경을 먼저 바라봅니다.
눈 덮인 능선과 거대한 바위, 계곡을 바라보며 자연의 위대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그 산에서 누군가는 매일 힘겨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2013년 1월 23일과 24일 방송된 EBS <극한직업> ‘설악산을 지키는 사람들’은 한겨울 설악산에서 탐방객의 안전과 자연을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해발 1,708m의 설악산은 한파와 폭설이 이어지면서 탐방로와 폭포까지 얼어붙은 상황이었습니다.
눈이 많이 내린다고 해서 그들의 일이 쉬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눈이 많이 내릴수록 해야 할 일이 늘어났습니다.
탐방객들이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눈을 치우고 얼음을 깨야 했습니다.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었고, 매서운 추위와 눈보라를 뚫고 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중청대피소까지 출근하는 직원들도 있었습니다.
중청대피소까지 가는 데만 약 세 시간이 걸렸습니다.
출근길 자체가 하나의 산행이었던 셈입니다.
더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설악산의 얼어붙은 빙벽에 직접 올라가는 재난안전관리과 직원들입니다. 이들이 위험한 빙벽에 오르는 이유는 자신들이 빙벽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빙벽을 오르는 산악인들이 안전하게 등반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얼음 상태를 확인하고 위험 요소를 살피는 일.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안전점검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실제 현장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했습니다. 얼음 조각이 떨어질 수도 있고 추락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반드시 그 일을 해야 했습니다.
산을 찾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산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중청대피소 직원들의 하루도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새벽부터 설악산 정상으로 향하는 탐방객들을 살피고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야 했습니다. 실제 방송에서는 대피소를 찾아온 탐방객이 가슴과 다리 통증, 마비 증상을 호소하는 상황도 소개됐습니다. 산 정상에서 발생한 응급상황은 평지와는 전혀 다릅니다.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도 산은 쉽지 않은 공간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지키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습니다.
설악산에는 수많은 동식물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원보존과 직원들은 눈이 쌓인 험한 산길을 걸으며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산양을 관찰했습니다. 가파른 암벽과 깊은 산속을 오르내리며 산양의 흔적을 찾는 일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하는 일입니다.
탐방객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산양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다니는 사람도, 빙벽의 상태를 확인하는 사람도, 새벽부터 대피소를 지키는 사람도 우리가 산을 찾았을 때는 쉽게 만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조금 더 안전하게 산을 걸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악산의 생명도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지금도 마음에 남는 이유는 아마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산을 지킨다는 것은 거대한 일을 한 번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눈이 오면 눈을 치우고, 얼음이 얼면 얼음을 확인하고, 위험한 곳이 생기면 먼저 올라가 살펴보고, 야생동물이 잘 살아가는지 확인합니다.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합니다.
2026년 현재도 설악산에서 자연과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활동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산양 보호 활동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2026년 조사에서는 국내 국립공원에 659마리의 산양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보도가 나왔고, 설악산 등 주요 국립공원에서도 산양 보호 활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방송 당시의 중청대피소는 현재 그대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중청대피소는 노후화에 따른 철거와 신축 계획이 추진되면서 2023년 10월부터 이용이 제한됐습니다. 따라서 방송 속 사람들이 근무하던 당시의 모습과 현재 설악산의 시설 환경에는 변화가 있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설악산을 찾는 사람이 있는 한, 그 산을 안전하게 지키고 자연을 보호하는 사람들의 역할은 계속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산을 오르며 정상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우리가 지나갈 길을 살피고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위험한 곳을 먼저 확인하고, 누군가는 산양의 흔적을 찾으며, 누군가는 추위 속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이름을 우리는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름을 몰라도 그들이 한 일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삶도 그런 것 같습니다.
꼭 박수를 받아야만 가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
힘든 날에도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지키는 것을 위해 묵묵히 하루를 보내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오래 움직이게 합니다.
크게 성공하는 삶보다 오래 기능하는 삶.
설악산을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설악산 뒤에는 산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자신의 하루를 바치고 있는 사람들.
어쩌면 진짜 산의 아름다움은 눈 덮인 능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산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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